안녕하세요. 서늘한 가을바람과 더불어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방학들 잘 보내셨는지요? 지난 학기에 심리학 이야기에서 다루었던 [계획오류]는 사회심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하위 주제들에 대한 예시였고, [정신분석학]과 [인본주의]는 주로 상담/임상심리학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친 ““심리학파”” 내지는 ““관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학기에는 흥미 위주로 진행을 하다 보니 다소 산만한 감이 없지 않았고, 처음 심리학을 접하는 학생 여러분에게는 전반적인 심리학에 대한 이해에 다소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었을 듯 싶습니다. 때문에 이번 학기에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현대의 ““심리학””이라는 큰 숲을 구성하고 있는 심리학의 세부 연구분야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주제는 인지심리학에 대한 소개입니다. 인지심리학, 보다 넓은 개념으로서 ““인지주의 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은 현대 심리학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지주의 패러다임으로서의 인지심리학은 곧,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일련의 정보처리 과정으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약 40년 전부터 이른바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 이후에, 인지심리학을 넘어서 다른 심리학의 제 분야인 사회심리학/임상심리학/상담심리학/산업심리학 등 심리학 전반에 걸쳐서 현대 심리학의 주된 관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인지심리학은 가장 밑바닥의 이론적 작업을 해 나아가는, 심리학의 제 분야 가운데에서도 가장 순수학문의 성격이 강한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국내 인지심리학/인지과학계의 거장이신 이정모 교수님의 인지심리학 개관서(2001)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 인지심리학은 넓은 의미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가-how the mind works?>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심리학 전체의 연구문제를 모두 포괄하는 이러한 정의보다는 일반적으로 좁은 의미의 정의가 받아들여지고 잇다. 좁은 의미에서의 인지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환경과 자신에 대한 지식을, 앎을 갖게 되는가, 그러한 앎을 어떻게 활용하여 각종 생활장면에서의 과제를 수행해 내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심리학 분야이다. 인간이 언어를 이해하고, 말하고, 산출하고, 주의하고, 대상을 알아보고, 기억하고,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여러 가지 숙련된 행위를 수행하는 심적 현상을 연구해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설명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가 인지심리학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인지심리학은 기본적 보는 틀로서 정보처리적 관점을 취하여 출발한다. 정보처리적 관점에서 본 인지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하나의 정보처리체계로 간주하고, 인간의 내외적 정보의 처리과정과 지식표상의 본질을 경험적/체계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될 수 있다. 즉 인지심리학은 주의, 형태지각, 학습, 기억, 언어처리, 문제해결적 사고, 추리, 판단과 결정 등의 인지과정을 중심으로 인간 마음의 정보처리적 과정과 내용의 본질을 경험적으로, 특히 실험적 방법을 주로 사용해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
자, 이제 인지심리학이 어떤 성격의 학문인가에 관한 이해가 조금 되시는지요? 위의 예문처럼 심리학 전체를 포괄하는 패러다임으로서 광의(廣義)의 인지심리학과, 인간의 보편적 인지 과정에 관한 기초적인 연구를 해나가는 협의(俠義)의 인지심리학으로서의 정의가 모두 있습니다. 인지주의 심리학은 20세기 중반 경부터 부상하여 심리학 내의 대안적 관점으로 자리매김 하였고, 인지주의 패러다임은 약 40년 전에 등장하여 심리학 전반과 인접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관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학문적 움직임이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인지심리학의 형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보다 한 세대 앞서 심리학계를 지배했던 행동주의 심리학에 대해서 간략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과학적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행동주의 이전까지, 심리학의 주된 연구방법론 중 하나는 ““내성법””이었습니다. 내성법이란, 실험실 내에서, 통제된 절차에 의해, 훈련 받은 실험자에게 자극을 가한 후, 실험자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과정과 구성요소를 주관적으로 보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개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음의 내용을 하위 요소로 쪼개어 나가서 그 부분부분을 이해해 나가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이런 방법론을 주로 사용했던 학파를 구성주의- structuralism라 합니다). 행동주의는 이러한 접근법에 강하게 반발하였습니다. 과학적 심리학은 철저한 과학적 방법론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고,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현상만을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험자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주관적 현상학을 개인 스스로가 보고하는 절차는 과학적으로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적 심리학은, 역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직접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 그 자체는 블랙박스로 취급을 해버리고, 어떤 자극을 물리적으로 조작한 다음 그 자극을 받아들인 후에 반응하는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행동주의 심리학은 자극과 반응(행동)만을 다루게 되고 ““마음”” 그 자체에 관해서는 설명하는 것을 포기해 버립니다. 하지만 이러한 편협한 관점은 곧 한계를 드러내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이지만,인간의 모든 행동 반응을 결정하는 것이 모두 낱개 자극들의 입력으로 환원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때로(어쩌면 수시로)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복잡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입니다. 그러한마음 과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실재하는 ““마음의 작동 과정”” 그 자체에 블랙박스를 쳐 버리는 것은 실재하는 현상을 부정해버리는 오류였던 것입니다. 인지주의 심리학은 이러한 인간의 마음 과정을 심리학이 연구하여야 할 대상으로 다시 살려냅니다. 인지주의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것을 천명합니다. 또한 그 패러다임으로, 인간의 마음은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고, 정보를 받아들이고, 정보를 저장하고, 다시 그 정보를 인출해 내어서 활용하는, ““정보처리의 과정””이다] 라는 ““정보처리적 관점””을 도입한 것입니다. 또한 인지심리학은 심리학 내에서 독자적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정보처리적 관점의 인지주의””라는 패러다임으로 연결될 수 있는 수많은 인접학문들 – 언어학, 컴퓨터과학, 신경과학, 철학 – 과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형성된 것입니다. 이러한 학제적, 다학문적 통합과학의 덩어리를 ““인지과학””이라합니다.
이번 시간은 인지심리학, 인지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를 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으므로 이 즈음에서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인지심리학의 방대한 연구 중 학생 여러분께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을 법한 주제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더 알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지 질문을 해주세요. 아래에 참고문헌을 첨부하니, 찾아보신다면 대부분의 궁금증은 해소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정모(2001). 인지심리학 – 형성사, 개념적 기초, 조망. 아카넷 이정모(2009). 인지과학 – 학문 간 융합의 원리와 응용.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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