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부정적 에너지를 거둬들이기
우리 사회는 유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관계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 애써야 했고, 때로는 갈등이 생길 경우 빨리 해결할수록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갈등으로 인해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고, 감정 표현을 억제하게 되면서 한국 고유의 화병과 같은 신체화 장애를 발생시키곤 한다. 과거에서 지금까지도 ‘굿’과 같은 방법으로 감정을 처리하는 노력도 있지만 결코 원인을 해결하거나 분노의 대상을 용서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용서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에서는 가해자에게 향한 부정적인 감정과 판단을 극복하고 상대를 자비롭게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용서는 가해자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노력의 과정인 것이다.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부정적 감정이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부정적 감정이 해결되고 용서가 되어야 비로소 관계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관계 회복은 단지 용서의 결과일 뿐, 용서를 한다는 것이 반드시 가해자와 관계 회복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용서를 한다는 것은 대상과 관계없이 내면의 격노, 억울함, 상처, 분노 등으로 인하여 일상의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부정적 에너지를 거둬들이는 것이다.
사티어 모델에서의 용서
용서 과정은 좀 더 내적이고 무의식적인 과정이다. 사티어 모델의 ‘용서하기’ 마지막 단계에서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삶을 제한시켜 온 자신을 용서하는 작업을 반드시 거친다. 타인을 용서하고 분노 때문에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용서를 강조하는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면 타인이나 상황에 대한 부정적 에너지를 놓아버리지 못하여 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용서의 과정은 자기와 화해하고 수용하며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는 것으로 상황의 피해자가 아니라 역경을 이겨낸 승리자가 되는 회복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용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용서하기 힘든 사건을 경험하고도 긍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용서하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용서는 강하게 붙잡고 있던 부정적 감정을 놓아버리는 것으로 나 자신의 내면에서 강하게 붙들던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음으로서 내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을 용서하고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지내면 상대방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용서는 상대방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분노란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 나를 보호하려는 감정이지만, 용서란 나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신을 희생자라고 생각하게 되면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서 극단적이고 과장된 관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 내 마음의 상처와 고통 속에 머무르면서 타인을 비난한다면 그들에게 자신을 지배하도록 허락하는 것과 같다. 사건과 상황은 이미 종료되었음에도 여전히 불만과 분노에 대한 이야기만 반복하면서 더욱더 분노와 억울함만 재경험하게 된다.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용서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며, 상대방의 나쁜 행동을 너그럽게 봐주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부인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아니며 내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아니다. 분노의 감정을 느끼지 않거나 포기하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상대방과 화해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용서를 강하게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용서를 거부하는 동안 분노와 상처 등이 내면에 가득 차 있게 되며 이런 부적절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우리 자신의 생명이 좀먹게 된다. 사티어 모델에서는 내면의 복합적인 상처, 분노, 두려움 등을 다루고 해결하는 과정을 거친 후 용서와 함께 자존감 수준에서 내적인 평화의 상태를 맞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용서는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과거에 경험했던 사건에 걸려 있는 강한 정서를 흘러 보내고 내면의 평화를 경험하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면서 자신의 힘을 되찾는 것이다. 영원히 피해자의 위치에 머무르는 대신 고통을 이겨낸 용감한 영웅이 되는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용서의 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건강상의 문제가 적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낮다고 한다. 인간의 신경체계는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위험이 과거의 사건인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사건인지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정을 억압하는 것만으로 우울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용서란 치료적 단계를 거치고 난 후 일어나게 되는 마지막 치유의 단계이다. 현재 느끼게 되는 평화와 수용 그리고 이해의 경험이다. 하지만 용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내적인 힘이 있어야 하며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분노에 대한 대처방식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적인 반응을 다루고 변형시켜야 한다. 용서의 목표가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전부 버리거나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그 사람의 축복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어떤 것으로부터 오는 영향에 내가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것이며 내가 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겠다는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사티어는 우리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 현재를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상처를 입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회복에 대한 책임이 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상처를 극복하고 초월하는 방법 또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사건 모두를 자신의 과거롤 묻어버리는 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니다. 분노를 품고 살았던 타인 중심의 삶이 아닌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경험을 통해 그로 인해 내 삶이 얼마나 제대로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용서는 강요하는 것이 아니며 분노와 상처를 붙들고 있다면 충분히 그 감정에 머물러야 한다. 자신에게 내적인 힘이 생기면 상처로부터 얻게 된 경험을 뛰어넘어 스스로의 행복을 되찾기 위한 삶을 다시 살 수 있다. 자신의 왜곡된 부정적 정체성에서 긍정적인 정체성으로, 과거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며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참고문헌>
사티어모델: 핵심개념과 실제적용, 김영애지음, 김영애가족치료연구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