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검색
작성자 사진kachoi81

[책] 유리동물원

[ 유리 동물원 ]

◾ 저자: 테네시 윌리엄스

◾ 갈래: 장막극(2막), 비극

❙ 책 소개

미국 역사상 최고의 극작가로 인정을 받고 있는 테네시 윌리엄스(1911.3.26.출생~1983.2.25.사망)는 1947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발표하고, 연극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그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보다 앞선 1944년 연극 무대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첫 번째 작품인 [유리동물원]을 발표하는데,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보다 특히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담긴 심리주의 극이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어린 시절 치명적인 병(디프테리아 혹은 류마티스성 열)을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하여 집안에서만 생활하면고, 주로 독서와 글쓰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그에게 누나 로즈는 유일한 친구이자 말벗이었다. 그러나 후에 로즈는 정신이상(조현병)으로 요양원에 보내지게 된다. 그는 미주리 대학을 중퇴하고, 아버지의 구두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겪었던 좌절의 경험을 희곡에 담아 연극 무대에서 전체적으로 어둡고 칙칙하게 재현하였다. [유리동물원]의 로라는 바로 자기 자신의 아픈 상처이며, 동시에 누나 로즈에 대한 그리움, 죄책감에 대한 회고이다. 그는 남부를 배경으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낡은 사고방식을 지닌 어머니 아만다를 통해 억눌린 생활을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극은 톰의 슬픈 회상으로 진행된다.

❙ 등장인물

아만다 윙필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과거에만 집착하면서, 현실은 외면하며, 허영심이 많고 감정의 기복이 크다. 아들의 꿈이나 진로에 대한 이야기에는 귀를 닫고 로라의 장애와 정신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 모습만 딸에게 투영한다.

로라(아만다 윙필드의 딸): 착하고 수줍음이 많지만 소심하며 내성적인 성격. 양쪽의 다리길이가 겉으로 보기에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심한 신체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현실을 도피하며 패쇄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지 못하고 스스로 만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아만다 윙필드의 아들): 자신의 욕구대로 살기를 바라며 자기중심적인 성격, 그렇기에 엄마의 억압을 힘들어한다. 절름발이 장애를 가진 누나를 불쌍하게 여기지만 아버지의 방랑기를 물려받아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적 기질이 풍부하다.

짐 오코너(손님): 로라의 첫 사랑. 잘생기고 진취적이며, 활발하며 자신감이 넘치지만 즉흥적이고 자아도취가 심한편이다.

❙ 장소 소개

◽ 세인트루이스의 어느 뒷골목

- 윙필드네의 아파트는 중산층 중에서도 낮은 계층 주민이 사는 혼잡한 도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 줄거리(로라 위주)

#1. 손님이 방문하기 전(1부)

허름한 아파트에서 아만다와 로라, 톰이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환상을 쫒아 도시를 떠났으며, 사는 곳의 주소 없이 보낸 그림엽서의 “잘 지내”가 마지막 인사였다. 가족의 식사 시간. 아만다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천천히 먹어라, 맛을 느껴봐라, 소화가 잘 되도록 제대로 씹어라... 톰은 그런 어머니를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한다.

아만다는 일을 하러 가기 전 로라가 다니는 실업대학에 들려 딸의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로라가 심하게 손을 떨어 타자의 키도 제대로 두드리지 못하였고, 첫 번째 속도 시험을 칠 때는 너무 좌절한 나머지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으며 바닥에 구역질을 했다. 그날 이후로 로라는 학교에 오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절망적이고 얼이 나간 표정으로 아만다가 로라의 방으로 들어가고 있다. 로라는 긴장한다. 로라는 아만다를 속이고 실업대학에 다니는 척하였지만, 사실은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공원, 미술관, 동물원의 새장, 펭귄을 보러 다녔으며, 최근에는 추위를 피해 보물관의 열대화초를 가꾸는 온실에 들어가 몸을 녹이기도 하였다.

로라: 실망하실 때 어머니의 얼굴에 나타나는 그 무섭도록 괴로운 표정을 나는 견뎌낼 수가 없었어요. 마치 미술관의 성모상 그림같이 말이에요!

아만다: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렇다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거니? 집에 틀어박혀서 시위대가 지나가는 거나 구경할 거냐? 유리 동물원 놀이를 하며 즐길 거냐? 언제까지나 그 닳아빠진 축음기판이나 듣고 있을 거냐?

아만다는 톰에게 로라는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그냥 표류하듯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냥 바람에 날리 듯 살아가고 있다. 실업대학에 다니게 했으나 겁을 먹은 아이는 구역질을 하였고, 교회의 청년회에도 데리고 갔지만 그 누구와도 이야기 하지 않았으며 아무도 그 애한테 말을 걸지 않았다. 로라가 하는 일은 유리 조각들이나 만지고 다 닳아빠진 축음기를 돌리는 정도이다. 로라는 이곳 생활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로라는 현재 생활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니 자기를 보호해 줄 어떤 사람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면 좋지 않을까? 그러니 네가 사람을 하나 골라 소개를 시켜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한다.

#2. 손님이 방문한 후(2부)

톰은 자신이 일하는 구두공장의 직장 동료이자 고등학교 동창인 짐을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학창시절 짐은 농구선수, 토론회의 사회자, 합창단의 회장, 오페라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도 맡았다. 깔끔하고 세련된 용모를 하고 있으며, 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짐은 직장에서도 성실성을 인정받았으며, 자신의 미래를 위해 야간대학에서 라디오 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로라는 학창시절 짝사랑했던 짐이 온다는 소식에 두렵고 떨린 나머지 짐을 피하려고만 한다. 식탁을 빠져나와 소파로 나와 있는 로라. 그녀 앞으로 짐이 다가온다.

짐: 내 기억에 당신은 외톨이였던 것 같아요.

로라: 저.... 저에게는 친구 사귀는 운이 많이 없었던가 봐요.

짐: 당신은 그렇게 장벽을 쌓지 말았어야 했는데요!

로라: 저도 그러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짐: 사람들이란 알고 보면 그렇게 두려울 게 없어요. 당신은 그것을 알아야 해요! 당신뿐만이 아니에요.

사실상 모든 사람이 다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법이에요. 당신은 자기 혼자만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로라: 아무 일도 하지 않아요... 딱히 내세울 건 없어요.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유리를 수집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려요. 유리는 상당히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이거든요.

짐은 로라에게 왈츠를 추자고 한다. 로라는 짐과 춤을 추는 것이 어색했지만 함께 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실수로 짐이 유리 동물들을 모아 둔 진열장에 부딪히면서 유리 말들이 모두 쓰러졌고 그녀가 아끼는 유니콘의 뿔이 부서졌다. 당황하는 짐에게 로라는 유니콘의 뿔이 떨어진 것은 기형이었던 뿔을 제거한 것과 다름없으니 오히려 더 잘된 일이라며 짐을 안심시킨다. 짐과 로라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짐은 로라의 입술에 입을 맞추다가 갑자기 어색해하더니, 자신에게는 애인이 있으며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이 집에 올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황급히 인사를 하고는 집을 떠난다. 로라는 또다시 절망하고, 고독 속에 남게 된다. 아만다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서 톰에게 크게 화를 내었고, 톰은 결심한 듯 집을 떠나 버린다.

❙ 로라의 상처

로라는 어릴 적 질병을 앓은 뒤 후유증으로 절름발이가 되었다. 그녀는 기질적으로 예민하며 내향적인 성격을 지녔는데 심한 낯가림과 민감한 기질을 지닌 그녀가 평생 다리를 전다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심리적 외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버팀목이 없으면 제대로 걷지 못하는데 쿵 쿵 소리를 내면서 친구들 사이를 걸어가는 자신이 초라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거리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친구들이 자신을 안 좋게 볼 것 같았고, 아이들이 몰려 있는 장소는 피하게 되면서 등교거부까지 하게 된다. 심리학자 아이젱크는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에 비하여 생리적 각성 수준이 높은 편으로, 사회적 장면에서는 더욱 부끄러워하고, 주저하면서 불편을 느낀다고 하였다. 부끄러움, 주저함과 같은 불편함은 로라에겐 공포와 같았다. 공포불안은 이전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사건을 연상시키는 자극에 대한 조건화된 공포 반응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조건화이론과 연관지어 PTSD와 ASD의 많은 회피 증상들은 내재적으로 공포적이다. 여기에는 그 트라우마를 연상시키는 사람, 장소, 상황을 회피하려는 노력이 포함되며 이것은 주로 이러한 자극들로 연상될 수 있는 공포 때문이다(트라우마치료의 원칙, P26). 공포는 무섭고 두려운 감정이며, 불안이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대인관계 이론을 발전시킨 미국의 정신과 의사 설리반은 ‘불안’이란 초조하거나 수줍음, 두려움 등 고통스런 감정과 관련되어 있으며. 대부분 대인관계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하였다. 로라는 견디어낼 수 없을 만큼의 불안이 찾아오면, 구역질을 하거나 쓰러진다. 유리멘탈을 지닌 로라는 공포불안을 회피하기 위하여 현실에서 도피하였고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로라는 유리 동물들을 정성스럽게 닦아주고 보살펴줌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있었다.

불우한 가족사도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려서 가족을 두고 떠났지만 그런 아버지에게 배신감과 동시에 그리움이라는 양가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그리워했다는 죄책감을 가질 수 있다. 아만다는 분노, 원망 등을 자식에게 쏟아 부었지만, 톰은 엄마의 불만을 받아주는 힘없는 아이로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톰은 이제 더 이상 엄마의 감정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로라는 어머니가 아버지처럼 우리를 버리고 떠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엄마에게 만큼은 영원한 약자로 남으려고 한다.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지닌 순종적인 딸로 만들었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억압하며 살아간 것이다. 아만다는 정신이 쇠약한 딸에게 애정을 주기 보다는 너희 아버지가 우리를 버렸다는 등의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였을 것이다. 물론 아만다가 대공황을 겪어나가는 어려운 시기에 자식을 키워야 하는 엄마로서의 책임감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이런 책임감은 로라를 가엽게 여기기보다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기)을 딸에게 투영하였고, 그럴 때마다 로라는 아만다의 꿈을 대신 이루어 줄 수 없는 자신에게 깊은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만다에게 “나는 절름발이잖아요... ” 라고 말하는 대사처럼 자신의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나는 행복할 수 없고, 사랑받을 수 없으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등의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결과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주기를 바랬지만, 늘 숙녀가 되기를 바라는 엄마를 보면서 자신만의 쥐구멍을 찾았을 것이다. 이렇듯 아만다는 딸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은밀히 주입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서적 협박’이다. 아만다는 자식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으면서 단지 자신의 감정만을 이용해 자식을 조종하려고만 한다.

톰은 아버지를 닮아 방랑자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것을 희생이라 생각하였고 늘 불만이었다.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집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로라는 그런 동생을 보면서 자신이 동생에게 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힘들어 했을지도 모른다. 아만다는 톰에게 로라의 결혼 상대자로 자신의 가족을 구원해 줄 돈 많은 남자를 소개시켜 주기를 원했지만, 톰은 짐의 사생활은 물어 보지도 않고,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한다. 톰은 로라가 짐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내려놓고 떠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가족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고, 그 일로 결국 집을 떠나 버린다. 자신의 말벗이자 친구였던 톰의 상실은 로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인 것이다.

로라는 학창시절 짝사랑했던 짐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고 부끄러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만 싶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다시 만난 짐은 그녀에게 상처만 주고 떠났다. 짐과의 이별은 정서적으로 더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친밀하고 특별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를 맺기 원하는데, 로라 또한 짐과 함께 있고 싶은 애정욕구를 느꼈기 때문이다. 로라 자신은 친구를 사귈 운이 없다고 생각하듯, 짐과의 이별을 겪으면서 누구와도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는 존재라고 결론을 내리며, 장기적으로 대인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 푸른 장미와 유니콘의 뿔

학창시절 로라가 질병에 걸려 결석을 하였고, 며칠 후 학교에서 마주친 짐은 로라에게 결석을 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로라는 폐렴(pleurosis)에 걸려 결석하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짐은 pleurosis를 blue rose로 잘못 알아듣는다. 짝사랑했던 짐이 자신에게 blue Rose라고 부른 사건을 로라는 잊지 못하고 있다. blue Rose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꽃이기 때문이다.

로라는 유리 동물들 중에서 유니콘을 가장 아낀다. 유니콘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동물이며 다른 말들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로라는 유니콘의 머리에 난 뿔은 기형이며 뿔 때문에 다른 말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녀 또한 자신은 절름발이이며, 이로 인해 친구와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유니콘과 자신은 서로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로라는 유니콘도 자신처럼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소외되고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blue Rose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꽃이며, 유니콘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다. 로라는 현실에 살고는 있지만 현실에 없는 것처럼 자신만의 상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만 살아가고 있다. 자유롭게 떠날 수 없는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로라는 집안에서만 갇혀 살고 있다.

❙ “아무리 불안해도 뛰어들 수밖에 없다”

정신의학자 융은 소년시절, 발달장애나 자폐증을 받을 법한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도 못하고 공상 세계에 빠져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다. 공상과 현실을 혼동하여 상식에서 벗어난 장난을 치다가 자주 혼나기도 하였다. 운동도 잘하지 못했고 신경질적인데다 불안감이 강하기도 했다. 열 살이 되어 바젤시의 김나지움(대학 예비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는 높은 가문의 수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부끄러움과 열등감을 느꼈다. 어느 날 다른 학생이 밀치는 바람에 머리를 부딪쳐 의식을 잃고, 발작이 왔다. 그는 신경증적 발작을 반복(질병이득)하게 되면서 학교를 쉬게 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좋아하는 놀이와 독서를 하며 만화를 그리고 공상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은둔형 외톨이의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융이 어떻게 은둔 생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눈앞에 있는 쾌락과 불쾌가 아닌, 인생이라는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자신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피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필요하다. ‘도망쳐봤자 별 수 없다.’ ‘아무리 불안해도 뛰어들 수밖에 없다.’ 라고 마음을 먹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동안 불안하고 무섭고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던 상황도 별거 아닌 걸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상황에 뛰어들어 보면 본인이 느꼈던 불안은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p 183~184).

일본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6~7화, 달걀귀신 편에서 오쵸는 몰락한 집안의 딸이다. 어머니는 오쵸를 무가 집안에 시집보내는 것을 삶의 보람이라 여긴다. 오쵸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감정은 숨긴 채 엄마의 염원에 따라 집안의 명예를 높여야 하는 의무를 받아들인다. 엄마의 뜻대로 지위가 높은 무사 집안 남자와 정략결혼을 하였지만 시댁식구들은 오쵸를 하녀 취급하고 무시하는 등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킨다. 그녀는 자존감을 잃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시댁 식구들을 모두 살인한다. 결국 사형수가 되어 감옥 안에 갇혔지만 어떤 방법으로 시댁 식구들을 살해했는지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퇴마사인 주인공 약장수는 천칭을 이용하여 오쵸에게 그녀의 어린 시절을 보여준다. 엄마는 어린 오쵸에게 “넌 내 젊을 때를 쏙 뺏어, 넌 예쁘니까 반드시 무가의 며느리가 될 수 있을 거야”, “너에겐 타고난 기량이 있으니 그에 맞는 소양을 익히면 양가집 집안으로 시집을 갈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한다. 그럴 때마다 어린 오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엄마를 위해 웃는 가면을 쓰고 자신이 더 노력하겠다고 한다. 오쵸는 약장수에게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견디었다고 말한다. 항상 웃고 다녀서 스마일마스크증후군이라 불리는 가면성우울증은 가족도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한다.

퇴마사 약장수는 오쵸에게 네가 죽인 것은 시댁 식구들이 아니라 엄마의 요구에 의해서 억지로 쓰고 있었던 가면들 속에 거짓된 자아들이었으며, 그것을 망상 속에서 죽인 것임을 이야기해준다. 오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엄마의 뜻대로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이 마치 감옥 안에 갇힌 것과 같다고 착각을 한 것이다. 약장수는 오쵸에게 “이곳은 갇혀있다고 생각하면 감옥이 되고, 나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성이 되오.” 라는 말을 한다. 오쵸에게 집이란 갇혀있는 감옥과 같았고, 로라에게 집은 나가고 싶지 않은 성과 같았다. 그러나 감옥이든 성이든 스스로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가기를 포기한다면 그 안에서 결국 자신의 정신까지 가두는 것이 된다. 오쵸는 이제 더 이상 무가 집안의 며느리가 아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유리 동물원]의 로라도 그동안 두려워 맞서지 못하고 회피했던 두려움을 세상을 향해 나아갈 용기와 도전으로 바꾸길 바란다. 더 깊은 안전 기지로 도망을 갈 것인가? 탈출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융의 이야기처럼 ‘도망쳐봤자 별 수 없다’ ‘아무리 불안해도 뛰어들 수밖에 없다.’ 라는 생각을 가져보는 것. 그것이 바로 스스로 닫아 놓은 문을 열 수 있는 힘이자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 유리동물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테네시 윌리엄스 저자, 시간과 공간사, 2019년)

▪ 성격심리학(노안영, 강영신 공저, 학지사, 2018년 2판)

▪ 은둔형 심리학자 장근영의 나와 싸우지 않고 행복해지는 법(장근영 지음, 책 읽는 수요일, 2011)

▪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동양북스, 2020)

트라우마 치료의 원칙(John Briere, Catherine Scott 지음, 시그마프레스)

조회수 307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